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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 볼거리

[조선 5대 궁궐]경복궁의 역사와 건축물 관람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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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으로 경복궁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한국의 역사와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는 경복궁은 우리나라를 넘어 세계적으로 귀중한 문화유산입니다. 그런 만큼 경복궁은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관광명소인데, 한국 사람이라면 경복궁을 비롯한 우리나라 궁궐의 역사와 아름다움에 대해 알아둘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특히 아이들과 함께 관람하고 체험한다면 우리나라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좋은 공부가 될 것입니다.

경복궁 전경 / 궁능유적본부

 

경복궁의 역사

 
경복궁은 1392년 조선 건국 후 1395년(태조 4년)에 창건한 조선왕조의 법궁(法宮, 임금이 사는 궁궐)으로, ‘경복(景福)’이라는 이름에는 '하늘이 내린 큰 복'(새 왕조가 큰 복을 누려 번영할 것)이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경복궁은 북악산을 주산(主山)으로 하는 배산임수 지형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경복궁 뒤로 청와대와 북악산이 보입니다 / 궁능유적본부


정문인 광화문 남쪽으로 6개의 관청이 형성되어 있는 육조거리(지금의 세종로)를 조성하고, 그 연장선 위에 근정전, 사정전, 강녕전 등 주요한 궁궐건물을 일렬로 배치하여 왕조국가인 조선의 축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광화문, 흥례문, 근정문이 일렬로 배치된 모습 / 궁능유적본부


경복궁은 1592년 임진왜란으로 완전히 불타 없어진 후  270년 이상 폐허로 남아 있다가 1867년(고종 4)에 비로소 다시 지어졌습니다.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이 아들을 왕으로 만들면서 약해진 왕의 힘을 강화시키기 위해 경복궁을 다시 크게 지은 것인데, 중건된 경복궁은 330동 7,225칸으로 이루어져 정무공간을 중심부에 두고, 좌우 뒤편으로 왕족의 생활공간, 곳곳에 정원시설들이 배치되어 작은 도시를 이루었습니다.

일제시대 전 경복궁의 모습 / EBS 지식채널e


1910년 경술국치 후 경복궁은 계획적으로 훼손되기 시작하여 일제강점기에 대부분의 건물들이 철거되어 중심부의 일부 건물들만 남았고, 1926년에는 광화문, 흥례문이 헐어지고 그 자리에 조선총독부가 지어지면서 경복궁의 경관이 심하게 훼손되었습니다.

일제시대 경복궁 건물 대부분이 헐렸습니다 / EBS 지식채널e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복원사업이 꾸준히 진행되어, 1995년부터 1997년까지 조선총독부 철거 및 흥례문 일원, 침전 권역, 건청궁과 태원전, 그리고 광화문 등이 복원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현재 복원사업이 진행중인 경복궁 / EBS 지식채널e


경복궁의 구조

 
경복궁은 조선왕조 제일의 법궁인 만큼 넓은 면적(691,921㎡)에 여러 건물들이 존재합니다. 그런 만큼 본격적으로 관람하기 앞서 경복궁의 전체적인 구조를 알아두면 좋을 듯합니다.

경복궁 내부 구조 / 궁능유적본부

 

광화문

 
광화문(光化門)은 경복궁의 정문으로, ‘광화’는 '빛이 널리 비춘다'는 뜻으로 ‘임금의 큰 덕(德)이 온 나라를 비춘다’는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광화문 전경 / 궁능유적본부


광화문은 다른 궁궐들의 정문과는 달리 돌로 높은 석축을 쌓고 그 위에 중층구조의 누각을 세워서 성곽의 성문과 같은 격식으로 장대하게 지어졌습니다. 

광화문 야경


광화문은 세 개의 문(홍예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중앙의 문은 왕이, 좌우의 문은 왕세자와 신하들이 각각 출입하였다고 합니다.

광화문 현판 / 궁능유적본부

 

흥례문

 
흥례문(興禮門)은 경복궁의 중문으로, 정문인 광화문을 지나면 맞이 하게는 되는 두번째 문입니다. 흥례문의 ‘흥례’는 ‘예를 일으킨다’라는 뜻으로, 원래 흥례문의 이름은 ‘홍례문’이었는데 1867년 경복궁을 다시 지을 때 지금의 이름으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흥례문과 근정전 전경 / 궁능유적본부


흥례문은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 청사를 지으면서 철거되었다가, 1996년 조선총독부 청사를 철거한 후 2001년에 복원된 것이라고 합니다.

흥례문 전경 / 궁능유적본부

 

경복궁의 중심, 근정전

 
근정전(勤政殿)은 경복궁의 정전으로 왕의 즉위식, 신하들의 하례, 외국 사신의 접견, 궁중연회 등 중요한 국가행사를 치르던 곳으로, 근정전의 ‘근정’은 천하의 일을 부지런히 하여 잘 다스리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근정전에서 정종, 세종, 세조, 중종, 선조가 왕위에 올랐습니다.

근정전 전경 / 궁능유적본부


근정전은 궁궐 내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격식을 갖춘 건물로 면적도 가장 넓게 차지하고 있습니다.

근정전 전경 / 궁능유적본부


근정전 앞마당, 즉 조정(朝廷)에는 박석이 깔려있고, 조정의 가운데 부분은 약간 솟아 있는데 이는 왕이 다니는 어도이고 그 양 옆으로 신하들이 다니는 신도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그 양 옆으로 정1품부터 정9품까지의 괸품을 구분하기 위한 품계석이 놓여 있습니다.  

근정전 야경 / 궁능유적본부


근정전은 1985년 국보로 지정되었는데, 근정전의 웅장한 모습에서 국보로서의 품격이 느껴집니다.

근정전 설경 / 국가문화유산포털

흰 눈이 쌓인 근정전의 모습은 한 편의 동양화같습니다.


사정전

 
근정전 뒤로 위치한 사정전(思政殿)은 왕이 신하들과 함께 일상 업무를 보던 공식 집무실인 편전(便殿)으로, 이곳에서 매일 아침 업무 보고와 회의, 경연들이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사정전 전경 / 궁능유적본부

사정전 야경 / 궁능유적본부

 

강녕전과 교태전 

 
사정전 뒤로 나란히 설치되어 있는 강녕전(康寧殿)과 교태전(交泰殿)은 왕과 왕비가 일상생활을 하던 침전으로, ‘강녕’은 ‘편안하고 건강하다’라는 뜻이고,  ‘교태’는 ‘천지, 음양이 잘 어울려 태평을 이루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왕은 이곳에서 독서와 휴식 등 일상생활뿐 아니라 신하들과 은밀한 정무를 보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강녕전과 교태전 전경 / 궁능유적본부


강녕전 건물 앞에는 넓은 월대가 있고,  강녕전 내부는 ‘정(井)’자 모양으로 9개의 방을 구성하여 가운데 방은 왕이 사용하고, 주위의 방에서는 상궁이 숙직하였다고 합니다. 

강녕전 내부 / 궁능유적본부


궁궐 내 다른 건물과 달리 강녕전과 교태전 지붕 위에는 용마루(건물 지붕 중앙에 있는 가장 높은 수평마루로 서까래의 받침이 되는 부분)가 없는데, 용으로 비유되는 임금의 침전인 강녕전과 교태전에 용마루를 설치하면 궁궐 내에 두 임금이 존재하게 되는 형국이 되어 강녕전과 교태전 지붕에는 용마루를 설치하지 않은 것이라고 합니다.

강녕전 야경 / 궁능유적본부


교태전 뒤로는 아미산(峨嵋山)이라는 왕비를 위한 후원이 조성되었는데, 이곳은 계단식 화단과 땅 밑으로 연기 길을 내어 후원으로 연결된 굴뚝이 아름답습니다. 

교태전 아미산굴뚝 야경 / 궁능유적본부

 

경회루

 
경회루는 옛날 1만원권 지폐에 그려져 있던 건물로 우리에게 익숙한데요. 경회루는 왕이 신하들과 규모가 큰 연회를 열거나 외국 사신을 접대하던 곳으로, 경회루(慶會樓)의 ‘경회’는 ‘경사스러운 연회’라는 뜻입니다.

경회루 전경 / 궁능유적본부


경회루는 경복궁 침전영역 서쪽에 위치한 연못 안에 조성된 누각(사방을 바라볼 수 있도록 문과 벽이 없이 다락처럼 높이 지은 건물)으로, 연못에서 뱃놀이를 즐기고 경회루에 올라 인왕산과 궁궐의 장엄한 경관을 감상하는 왕실 정원으로 꾸며졌다고 합니다.

경회루 야경 / 궁능유적본부


경복궁 창건 당시에는 작은 누각이었으나 1412년(태종 12)에 크게 연못을 파고 지금과 같은 규모로 다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경회루 전경 / 궁능유적본부

경회루 측면 / 궁능유적본부

경회루 1층 기둥 / 궁능유적본부

 

수정전

 
경회루 옆으로 위치하고 있는 수정전(修政殿)은 경복궁 창건 당시에는 없었으나 고종 대 경복궁을 다시 지을 때 지은 건물이라고 합니다. 특히, 세종 때 훈민정음 창제의 산실인 집현전이 수정전 자리에  있었다고 합니다.

수정전 전체 전경 / 궁능유적본부


수정전은 일상 집무공간으로 사용되다가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 때 군국기무처가 들어섰고, 이후 의정부(議政府)가 내각(內閣)으로 바뀌면서 내각의 청사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수정전 전경 / 궁능유적본부

수정전 야경 / 궁능유적본부

자경전

 
자경전(慈慶殿)은 현종(24대 왕)의 어머니인 신정왕후 조대비가 고종(26대 왕)의 즉위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에 대해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이 이에 대한 보답으로 조대비를 위한 거처를 궁 안에 만든 것입니다. ‘자경’은 ‘어머니의 복을 누린다’라는 뜻으로, 정조가 왕위에 오른 후 어머니 혜경궁(헌경황후) 홍씨를 위해 창경궁에 지은 ‘자경당’의 유래가 된다고 합니다. 

자경전 전체 전경 / 궁능유적본부


자경전은 1867년(고종 4) 경복궁이 중건될 당시 지어진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화재로 소실된 것을 1888년(고종 25)에 다시 지어 지금까지 남아 있는 건물이라고 합니다.

자경전 전경 / 궁능유적본부


조대비가 고종의 즉위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에 대한 보답으로 지어진 것인 만큼, 궁 안에서 가장 화려하고 섬세하게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건청궁

 
건청궁(乾淸宮)은 1873년(고종 10)에 왕과 왕비가 생활했던 공간으로, ‘건청’은 ‘하늘은 맑다’라는 뜻으로, 경복궁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건청궁은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으로부터 정치적 독립을 원했던 고종이 개인 돈을 들여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건천궁 전경 / 궁능유적본부


고종과 명성황후가 이곳에서 10년 정도 생활하였는데, 이곳은 1895년(고종 32) 명성황후가 시해되는 을미사변이 일어난 비운의 장소이기도 합니다. 고종은 을미사변이 발생한 후 이듬해 러시아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기게 됩니다. 

건청궁 곤녕합. 1895년 을미사변 때 명성황후가 일본인 자객에게 시해된 역사의 현장입니다 / 궁능유적본부


일제시대 경복궁 건물들이 차례로 파괴되면서 건청궁은 1909년에 철거되어 이 자리에 조선총독부 미술관이 지어졌으며, 한동안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사용되다가 1998년 철거되었고, 그 후 2007년 원래 모습대로 건청궁이 복원된 것입니다.


집옥재

 
집옥재(集玉齋)는 1891년(고종 28) 창덕궁 함녕전의 별당이었던 집옥재와 협길당 등을 건청궁 서쪽으로 옮겨 지은 것으로, 고종의 서재와 외국 사신을 접견하던 장소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집옥재 전경 / 궁능유적본부

 

향원정

 
향원정(香遠亭)은 경복궁 후원에 조성된 정자로, 향원정의 ‘향원’은 ‘향이 멀리 간다’라는 뜻입니다. 원래 이곳에는 세조 대에 세운 취로정이 있었다고 하는데, 1873년(고종 10) 고종이 건청궁을 지을 때 그 앞에 연못(향원지)을 파서 연못 가운데 섬을 만들고 2층의 육모지붕의 형태로 지었다고 합니다.

향원정 전경 / 궁능유적본부


향원정을 가기 위해 지은 다리는 ‘향기에 취한다’라는 뜻에 취향교(醉香橋)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원래 취향교는 무지개 모양의 흰색 다리로 조성되었으나 한국전쟁 때 파괴된 것을 1953년에 복원하였는데 향원정 남쪽으로 복원되었다고 합니다. 

가을 단풍이 든 향원정 전경 / 궁능유적본부

한 편의 그림 같습니다. 너무 아름답습니다.

향원정 내부 / 궁능유적본부

 

경복궁을 관람하면서 경복궁 내 건물들을 비롯한 구석구석이 모두 훌륭한 미술 작품 같다는 생각과 함께 조선왕조의 문화능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실감하게 됩니다. 경복궁은 정말 아름다운 우리나라 문화의 보고이자 귀중한 보물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우리 민족의 상징과도 같은 귀중한 문화유산이 임진왜란과 일제시대를 거치며 외세에 의해 무참히 파괴되었다는 사실에 마음이 너무 아프기도 합니다.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경복궁은 과거 그대로의 모습이 아닌 후대에 이르러 복원된 것이란 점에서 경복궁은 우리의 슬프고 아픈 역사가 공존하는 곳이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 경복궁 관람 정보

  • 관람시간 
    1월, 2월, 11월, 12월 : 09:00~17:00
    3월~5월, 9월, 10월 : 09:00~18:00 
    6월~8월 : 09:00~18:30
  • 정기휴일
     화요일
  • 관람요금
    개인 3,000원, 단체 2,400원(10인 이상 적용) 
  • 한복착용자 무료관람
  • 매월 마지막주 수요일(문화가 있는 날) 무료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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