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우리 가족 볼거리

[조선 5대 궁궐]경희궁의 역사와 건축물 관람 정보

반응형

오늘은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과 함께 조선 시대의 5대 궁궐 중 하나로 불리는 경희궁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경희궁 전경 / 나무위키

 
경희궁은 다른 궁궐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데, 이는 아마도 다른 궁궐들은 현재도 궁궐로서의 규모나 형태를 얼추 갖추고 있는 데 반해 경희궁은 그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경희궁은 조선시대 10명의 왕들이 살았던 궁궐로서, 법궁인 동궐(창덕궁, 창경궁)에 대응하는 이궁(離宮, 궁성 밖에 마련된 임금의 거처)으로서 역할을 하였던 곳인 만큼 그 역사적 의미가 큰 곳입니다.
 

경희궁 숭정전 전경 / 문화재청

 

경희궁 관람 정보

 

  • 관람시간  09:00 ~ 18:00
  • 입장료  무료
  • 휴관일  매주 월요일 / 1월 1일
  • 지하철  서대문역 4번 출구, 광화문역 7번 출구
  • 주차   서울역사박물관 주차장(유료)
경희궁 위치

 

경희궁의 역사

 
 경희궁은 광해군 때인 1617년 짓기 시작하여 1623년 완공되었습니다. 창건 당시에는 경덕궁(慶德宮)으로 불렸는데 영조 때인 1760년 경덕궁이라는 이름이 인조(조선 16대 왕)의 아버지 원종의 시호(살아생전 공덕을 쌓은 왕의 인생을 평가하고 찬양하기 위해 죽은 후에 올리는 호칭)인 경덕(敬德)과 발음이 같다고 하여 경희궁(慶熙宮)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경희궁 숭정문 / 한국관광공사

 
경희궁(慶熙宮)은 '기쁨이 넘치고 빛나는 궁'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한편, 경희궁은 한양 도성 서쪽에 있어 '서궐(西闕)'이라고도 하였는데, 이는 한양 도성 동쪽에 있어 '동궐(東闕)'로 불린 창덕궁과 창경궁과 대비되는 별칭입니다.
 

경희궁 숭정전 / 문화재청

 
 원래 경희궁에는 정전인 숭정전과 편전인 자정전 외에도 수많은 전각(건물)들이 지형에 맞게 배치되어 있었는데, 1820년대 무렵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서궐도안(西闕圖案)'을 보면 그 규모와 구성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서궐도안(西闕圖案)


경희궁 전체의 모습을 그린 '서궐도안'은 밑그림 상태로 채색까지는 되어 있지 않은데, 송규태 화백이 2005년 서궐도안을 바탕으로 색을 입힌 그림 '서궐도'를 통해 과거 경희궁의 모습을 좀 더 입체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서궐도 / 문화재청

‘서궐도'를 통해 과거 경희궁에는 전각과 문이 약 190여 개나 되고 정문인 흥화문은 남향이 아니라 종로와 마주 보는 동쪽을 향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고종 때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경희궁은 원래 모습을 잃게 되었습니다. 당시 경희궁 내 전각 대부분을 헐어 경복궁을 짓는 데 재료로 사용하였고, 이후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로 소유가 넘어가 경성중학교와 관사 등이 세워지면서 건물 대부분이 헐렸고 면적도 크게 줄어들어 결국 궁궐로서의 모습과 위상을 잃게 되었습니다.
 

경복궁 중건으로 인해 헐려 사라지기 전의 경희궁 / 나무위키

 
광복 이후 일제가 물러가고 경성중학교 자리에 1946년 서울공립중학교가 들어섰고, 이후 서울공립중학교가 서울중학교와 서울고등학교로 분리되면서 경희궁 터는 서울고등학교 부지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1980년 서울고등학교가 서초동으로 이전하면서 경희궁 터가 현대건설에 매각되었지만,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사적(史蹟)으로 지정되고, 서울시에서 다시 경희궁 터를 사들여 발굴조사와 복원공사를 한 끝에 현재 숭정전과 자정전, 태령전 세 전각이 복원되어 있습니다.
 

경희궁 사람들

 
경희궁은 광해군 때인 1617년 경덕궁이라는 이름으로 짓기 시작하여 1623년 완공되었지만, 정작 광해군은 1623년 인조반정으로 왕위에서 쫓겨나면서 경희궁(당시에는 경덕궁)에 들어가지 못하였습니다.
 

경희궁 옆길 / 한국관광공사

 
그 이후 임금이 된 인조에서 철종에 이르기까지 10명의 왕들이 경희궁에서 생활하였는데, 그 가운데 경희궁에서 가장 오래 머문 임금은 영조로서, 영조는 재위기간의 1/3이 넘는 약 19년간 경희궁에서 생활하였고, 숙종은 13년간 경희궁에 머물렀는데 숙종은 경희궁에서 태어나 경희궁에서 승하(임금이 세상을 떠남)였습니다. 숙종을 비롯하여 영조, 순조 등이 경희궁에서 승하하였습니다.
 

경희궁 회랑 / 한국관광공사

 
조선 시대 임금의 즉위식은 선왕 장례의 연장선 상에서 치러졌기에 경종, 정조, 헌종이 경희궁에서 승하한 선왕의 뒤를 이어 경희궁에서 즉위했습니다. 즉위식은 장례의 분위기 속에서 치러졌던 만큼 큰 전각에서 진행되지 않고, 경희궁에서는 숭정문에서 조촐하게 이루어졌습니다.
 

경희궁 숭정문 전경 / 문화재청

 
숙종부터 정조 즉위까지 경희궁은 최전성기였고, 왕을 비롯해 왕비와 후궁 등이 생활한 일상공간이었습니다. 인현황후, 희민 장씨, 혜경궁 홍씨도 경희궁에서 살았던 대표적인 왕족입니다.
 

숭정전 전경 / 한국관광공사

 

경희궁 주요 건물

 

흥화문

 
흥화문(興化文)은 경희궁의 정문으로, 경희궁에 다시 돌아온 유일한 건물입니다. 흥화문은 과거 이토 히로부미 추모 사찰인 박문사로 옮겨져 박문사의 정문으로 사용되었다가 1988년 다시 경희궁으로 옮겨왔습니다. 다만, 원래 있던 위치(구세군 회관 부근)로 옮기지 못하고, 서울고등학교 정문이 있던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습니다. 
 

흥화문 / 문화재청

 

숭정전

 
숭정전(崇政展)은 경희궁의 정전(正展)으로서 경희궁의 중심이 되는 건물입니다. 숭정전은 법전으로서 임금이 신하들과 조회를 하거나 궁중 연회 등 공식 행사가 이루어진 곳이었습니다. 특히 경종, 정조, 헌종 세 임금의 즉위식이 이곳 숭정전에서 거행되었습니다. 현재 우리가 보는 숭정전은 발굴 조사를 토대로 과거의 모습을 복원한 것입니다.
 

숭정전과 조정 / 문화재청

 

자정전

 
숭정전 뒤편으로 자정전(資政展)이 있는데,  자정전은 편전으로서 임금이 신하들과 회의를 하거나 경연을 여는 등 공무를 수행하던 곳입니다. 숙종이 승하한 후에는 빈전으로 사용되기도 하였으며, 선왕들의 어진이나 위패를 임시로 보관하기도 하였습니다. 현재의 자정전은 '서궐도안'을 토대로 복원된 것입니다.
 

경희궁 자정전 / 나무위키

 

태령전

 
태령전은 영조의 어진을 보관하던 곳입니다. 본래는 특별한 용도가 지정되지는 않았던 건물이었는데, 영조의 어진이 새로 그려지자 1744년(영조 20)에 이곳 어진을 봉안하였고, 영조가 승하한 후에는 혼전으로 사용되기도 하였습니다. 태령전 역시 '서궐도안'을 토대로 복원된 것입니다.
 

경희궁 태령전 / 나무위키

 

서암

 
태령전 뒤편 언덕에 기이한 모양의 바위가 있습니다. 본래 왕암(王巖)이라고 불렸는데, 그 이름때문에 광해군이 이곳에 경희궁을 짓게 되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숙종 때 이름을 서암(瑞巖)으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경희궁 서암

 
 

다른 궁궐 이야기

 

경복궁, 한국 궁궐의 역사와 아름다움의 만남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으로 경복궁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한국의 역사와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는 경복궁은 우리나라를 넘어 세계적으로 귀중한 문화유산입니다. 그런 만큼 경복궁은 한국

moderndaddy.tistory.com

 

창덕궁, 조선 왕들에게 가장 사랑받은 궁궐

지난번에 포스팅해 드린 경복궁에 이어 이번에는 창덕궁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경복궁만큼이나 우리에게 익숙한 창덕궁은 조선시대 궁궐 중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왕들이 거처했던 궁궐로

moderndaddy.tistory.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