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극 드라마나 영화 등에서 한 번쯤은 '전하, 종묘 사직을 생각하소서!' 이러한 대사를 들어보셨을 겁니다. 종묘와 사직, 많이 들어 보았지만 그 정확한 의미는 잘 모르시는 분들이 많은데요. 오늘은 이 중 '사직'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사직단 이야기
사직단은 토지의 신인 사(社)와 곡식의 신인 직(稷)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농경사회였던 우리나라는 땅과 곡식이 국가 경제의 근본이었기 때문에, 고대부터 사직에서 제사를 지냈다고 합니다. 사직단은 조선 건국 후 1395년(태조 4) ‘궁궐(경복궁)을 기준으로 왼쪽(동쪽)에 종묘, 오른쪽(서쪽)에 사직을 세운다’(좌묘우사)는 예에 따라 현재의 자리에 창건하였습니다. 종묘와 사직 모두 국가의 가장 중요한 대사(大祀, 큰 제사)이지만 이론적으로는 사직의 위상이 더 높았습니다.
사직단을 관리하고 제사와 실무를 담당하는 관청을 사직서(社稷署)라고 하였는데, 사직단은 종묘와 더불어 조선왕조의 근간이 되었던 곳으로 국가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고, 나라의 큰일이 있을 때 지내는 기고제, 가뭄에 비를 기원하는 기우제, 풍년을 기원하는 기곡제 등의 제사가 사직단에서 행해졌다고 합니다.
사직단에는 동쪽에 사단(社壇), 서쪽에 직단(稷壇)을 배치했고, 단 주위에는 유(壝, 제단 유)라는 낮은 담을 다시 사방에 4개의 신문(神門)을 설치한 담을 둘러 이중으로 담을 설치하였고, 그 외부에 제사 준비를 위한 부속 시설을 두었습니다. 그러다가 1592년 임진왜란으로 단만 남기고 모두 소실되었다가 1608년(선조 41년) 종묘 중건 이후 복원되었습니다.
고종은 1897년(광무 1) 대한제국을 선포하며 황제국의 위상에 맞게 땅의 신인 국사(國社)와 곡식의 신인 국직(國稷)의 신위를 각각 태사(太社)와 태직(太稷)으로 높였습니다.
그런데, 1910년 전후로 일제에 의해 제사가 폐지되면서 이후 사직단 내 부속 건물들이 철거되었고 두 단만 남긴 채 공원으로 조성되었는데, 1963년 사적으로 지정된 후 1980년대에 담장과 부속 시설 일부를 복원하기 시작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주요 건축물
사단과 직단
사단(社壇)과 직단(稷壇)은 사신과 직신에게 제사를 올리는 제단으로, 정사각형 모양으로 돌을 3단으로 쌓고 안은 황토로 채우고 사방에 계단을 설치하였습니다. 사단과 직단은 낮은 담(유壝) 안에 위치하는데 담의 네 면에는 문(유문壝門)이 하나씩 있습니다. 그리고 유와 신실, 판위 등을 두른 담장(주원周垣)에는 사방에 4개의 신문(神門)이 세워져 있는데, 바깥쪽에 있는 북쪽 신문은 신이 드나드는 문이기 때문에 삼문(三門)으로 조성되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에는 각 단에 땅의 신인 국사지신(國社之神)과 곡식의 신인 국직지신(國稷之神)의 신위를 모시고 제사를 지냈으며, 두 신위와 더불어 각각 그 부인격인 후토씨지신(后土氏之神)과 후직씨지신(后稷氏之神)의 신위도 같이 모셨습니다.
사직단 대문
사직단 대문(社稷壇 大門)은 외곽 담장과 연결되어 있던 사직단의 외곽문으로, 정면 3칸, 옆면 2칸의 구조로, 대문 가운데 위쪽에는 ‘사직단’ 현판이 1962년부터 걸려있습니다. 원래는 약 24m 앞쪽에 있었으나 도로확장 공사로 인해 현재의 자리로 옮겨졌다고 합니다.
안향청
안향청(安香廳)은 사직제사 때 사용하는 향과 축문을 보관하는 곳으로, 평상시에는 사직서 관원들이 사용하다가 왕이 행차할 시에는 왕이 머무는 어재실(御齋室)로도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전사청
전사청(典祀廳) 권역은 사직제사를 준비하고 음식을 마련하는 곳입니다. 이곳에는 사직단을 관리하는 수복이 머무는 수복방(守僕房), 제사에 사용되는 제기 외의 물건을 보관하는 잡물고(雜物庫), 제사에 사용하였던 우물인 제정(祭井), 제사를 준비하고 제사음식을 마련하던 전사청(典祀廳), 제사에 쓸 소·양·돼지를 잡던 재생정(宰牲亭), 제기를 보관하는 제기고(祭器庫), 절구를 두고 곡물을 찧는 곳인 저구가(杵臼家), 제사 전 음식을 두는 찬만대(饌幔臺)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사직대제
사직대제(社稷大祭)는 토지의 신(사신社神)과 곡식의 신(직신稷神)에게 국가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올리는 제사입니다. 땅은 조선 국왕의 통치영역을 상징하고 그 땅에서 나는 곡식은 백성의 삶의 기반이므로, 사직대제는 조선의 제사 중 가장 상위의 존재에게 지내는 중요한 제사였습니다. 사직대제는 종묘대제와 함께 오례의(五禮儀)의 길례(吉禮) 중 대사(大祀)에 속하는 제사로 격식과 규모가 큰 제사였니다.
사직대제는 궁궐 서쪽의 사직단에서 거행하였는데, 사직단에는 사단(社壇)과 직단(稷壇) 두 개의 단이 있는데, 사단(社壇)에는 국토의 신인 국사(國社)와 후토(后土)를, 직단(稷壇)에는 오곡의 신인 국직(國稷)과 후직(后稷)의 신위를 모시고 제사를 지냈습니다.
조선시대에 사직대제는 춘추제(春秋祭)와 납제(臘祭)라고 하여 한 해에 세 번 지냈는데, 춘추제는 봄의 가운데 달인 음력 2월과 가을의 가운데 달인 음력 8월 무일(戊日)에 지내는 제사이고, 납제는 음력 11월 동지 이후 세 번째 미일(未日)에 지내는 제사입니다.
사직대제는 대한제국 시기까지 지냈으나 일제강점기에 폐지되어 신주가 불태워졌습니다. 그 후 1988년에 다시 복원되었으며, 2000년 10월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고 현재는 매년 9월 넷째 주 토요일에 봉행하고 있다.
사직대제에 쓰이는 제기(그릇)는 변(邊), 두(豆), 보(簠), 궤(簋), 작(爵) 등이 있고, 음식(제수)은 희생(소, 양, 돼지고기), 곡물(쌀, 수수, 찰기장 등), 떡, 젓갈, 과실 등이 있습니다.
종묘 이야기
조선 5대 궁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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