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삼청동에 있는 갤러리현대(본관)에서 한국 단색화의 선구자로 불리는 김기린 화백(1936~2021)의 개인전 <무언의 영역> (무료, 전시기간 : 2024. 6. 5. ~ 7. 14.)을 관람하고 왔습니다.
이번 전시는 김기린이 화백이 세상을 떠난 이후 첫 전시인데, 이번 전시에서는 1970년 작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연작과 1980년대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계속했던 '안과 밖' 연작과 함께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작품으로 종이에 그린 유화 작업 등 40여점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김기린 화백의 본명은 김정환입니다. 그는 한국외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어린 왕자' 생텍쥐베리를 공부하러 1961년 프랑스에 가서 발레리, 랭보, 말라르메와 같은 시인이 되기 위한 20대를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30대에 들어서 미술사를 공부하며 그림을 배우고 자연스레 창작 활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시인이 되기 위해 프랑스로 떠난 김정환은 그림을 그리는 김기린이 되었습니다. 김기린은 먼저 세상을 떠난 고교 동창이 "너는 목이 짧으니 기린이라고 하라"며 반어적으로 붙여줬던 별명입니다.
김기린 화백의 작품으로 1967년 흰색, 노랑, 녹색, 남색의 색기둥을 그린 추상화가 주목을 받았고, 1970년 검은 바탕에 검은 직사각형을 그린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작품이 발표되었습니다. 1977년부터는 2미터가 넘는 대형 캔버스를 여러 겹 검게 칠한 뒤 십자형으로 4등분하고 각 네모 안에 수없이 검은 점을 찍는 작업을 하였는데, 점을 찍고 마르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찍어 30겹을 찍어 완성하는 데 2년 가량이 걸렸다고 합니다.
멀리서 그림을 보면 그저 밋밋하고 단순한 그림같지만, 그림을 가까이 가서 보면 점마다 그 형태가 조금씩 다르고 붓칠의 겹에 따라 올록볼록하여 묘한 입체감과 생동감이 느껴집니다.
사각형 패턴을 해서 찍는데도
찍는 순간마다 점이 다릅니다.
그게 내 그림의
생명력이라고 생각합니다.
- 김기린(2012년)-
창에서 출발했어요.
창호지는 나의 먼 그리움이에요.
돌아갈 수 없는
그리움이 담긴 시간,
잊을 수 없는 고원의 겨울...
-김기린(2021년 인터뷰)
함경남도 고원에서 태어난 김기린 화백은 14세때인 1950년 월남했다가 전쟁이 나면서 끝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다보니 평생 고향에 대한 그리움, 향수를 안고 살았고, 고향 집 아침 햇살이나 달빛을 투과하던 문 창호지에서 모티브를 얻었습니다.
김기린 화백은 프랑스 유학 10년만에 파리 국립고등장식미술학교를 졸업하고 유명 화가들의 작품을 복원하는 복원가로 생계를 꾸려가면서 자기만의 단색화를 그렸다고 합니다.
나는 내 자신이
반듯하게 서기 위해
그림을 그립니다.
그림이나 내가 뭐 대단한 것
한다고생각하지 않습니다.
- 김기린(2012년)-
전시장 한편에는 김기린 화백이 프랑스에서 발레리, 랭보, 말라르메와 같은 시인이 되고 싶어 노트에 프랑스어 단어를 적으며 공부했던 노트와 김정환 이름으로 발표한 시, 김 화백의 젊은 시절 모습과 프랑스 개인전 당시 사진 등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전시장 한켠에 김기린 화백의 생전 모습과 육성이 담긴 영상을 재생하는 공간이 있습니다. 짧은 영상이지만 김기린 화백의 생전 모습과 김 화백의 생각, 지론을 직접 접해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김기린 화백의 작품들을 감상하는 동안 평생에 걸쳐 한 가지 목표에 몰두하여 꾸준하고 치열하게 탐구한 바를 그림으로 승화시킨 예술가의 열정과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위대한 예술가 김기린 화백을 통해 새로운 감동과 울림을 얻고 가는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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